50년 전, 한 20대 청년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화했습니다.
22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입니다.
50주기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다시금 다짐했습니다.
이경국 기자입니다.
[기자]
한 달 휴일 단 이틀, 하루 평균 노동시간 무려 14시간.
정작 일당으로 손에 쥐는 돈은 차 한 잔 값인 단돈 50원.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6, 70년대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를 내세워 경제성장에 열을 올리던 1964년.
대구 출신인 16살 전태일은 동생과 동대문 평화시장에 발을 디뎠습니다.
의류공장 말단으로 일하던 전태일은 공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여공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만 2만 명가량, 대부분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임현재 / 전태일 열사 동료 : 반항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는 시다나 보조, 나이 어린 여공들은 정말로 착취를 많이 당했고, 힘들었고….]
이들을 도우며 노동문제 의식을 키우던 전태일은 스무 살이 되던 해 근로기준법에 눈을 뜹니다.
이후 동료들과 '바보회', '삼동회'라는 단체를 꾸려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나섰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수없이 구청과 노동청을 찾아 개선을 촉구했지만, 돌아온 건 천대와 괄시뿐이었습니다.
결국, 1970년 11월 13일, 22살이던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피맺힌 외침이 시장을 메웠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뒤 평화시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전국에선 활발한 노동운동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반노동자적 정책에 대한 항의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뒤,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공로를 되새기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노동운동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전태일 열사가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단 말에는 '아직 멀었다고 하실 것'이라며 노동존중 사회로 나가겠단 각오를 다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생전의 전태일 열사가 모범업체를 구상하며 쓴 사업계획서를 보며 사회적 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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