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주인', 의료진은 '고용인?'...이상한 나라의 병원

2019-11-04 1

해가 갈수록 수익을 쫓는 민간 병·의원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순수하게 진료에만 초점을 맞춘 공공의료 서비스는 줄어들고 있는 게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현주소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보면 보건소를 포함한 국공립병원의 병상을 가리키는 공공병상의 비중이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국가 중 최하위 권에 머물러 있는데다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을 (health for all)'이라는 세계보건기구 (WHO)의 권고와는 거꾸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결국 시민들이 직접 병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 원, 이만 원씩 출자금을 모아 각 지역별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을 만들었고 자신들이 이용할 양·한방 병원, 치과 등을 직접 설립했다.

또 조합원들은 뜻을 함께하는 의료진들과 협력관계를 맺어 자신들에게 맞도록 의료서비스체계를 다시 세웠다. 이렇게 해서 2012년 12월 말 현재 전국에서 20개의 의료생협이 모두 29개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인 안성 의료생협의 경우 지난 1994년 지역주민과 주말진료를 나갔던 기독학생회가 주체가 돼 설립된 뒤 현재는 조합원 4832세대, 출자금 879,558,511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안성 의료생협의 농민의원을 찾은 이윤주 (19세, 안성시 보개면)씨는 "일반 병원은 부담스러워서 안 가려고 하는데 여기는 편안하게 올 수 있다"며 "진료받을 때도 다른 병원에 비해 설명도 많이 해준다. 생협 병원에 오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여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높은 만족도를 드러내고 있는 의료생협의 병원은 무엇보다 처방에서 일반병원과 큰 차이를 보인다.

2010년 가정의학회 발표 자료를 보면 이 해 상반기에 항생제 처방률의 경우 전국 의원 평균이 53.2%인데 비해 의료생협 병원은 약 12.7%였고, 주사제 처방률도 전국 의원 평균이 24.2%인 데 반해 의료생협 병원은 12.05%에 그쳤다.

그러나 환자중심의 의료 서비스로 의료생협이 명성을 얻게 되자 '짝퉁' 의료생협이 줄줄이 생겨나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짝퉁' 의료생협이란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가 없는 일반 개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없지만 협동조합을 만들면 가능하기 때문에 오직 병원 설립 허가를 따내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적인 협동조합을 가리킨다. 이런 유사의료생협이 세운 병원은 당연히 조합원의 활동이 없어 환자 중심의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으며 설립자가 대개 사무장직을 맡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사무장 병원'으로 불린다.

이와 관련해 의료기관을 감독하는 보건복지부는 최근 유사의료생협이 전국적으로 수백 개가 생기면서 이런 '사무장 병원'이 난립해 과잉 진료와 불법 진료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유사 의료생협으로 인해 건전한 의료생협이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의료생협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진들에게 의료생협에서 근무하지 말라는 권고까지 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의료생협이 의료진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민화선 시흥 희망 의료생협 상임이사는 "생협에 오는 의사는 생협이 갖고 있는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의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의료생협 성공의 관건은 좋은 의료진을 확보하는 데 있으므로 의료생협들이 연대해 그런 의료인을 양성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획 및 제작 : 김송이 김원유 기자 김기현 PD / CG제작 : 김성기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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