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 민주항쟁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재평가됐는데요.
하지만 관련자 인정 등은 제자리걸음이어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오태인 기자입니다.
[기자]
1979년 10월, 유신독재에 반대해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던 부마 민주항쟁.
당시 51살로 목수였던 고(故) 유치준 씨는 마산 항쟁 가운데 가장 격렬했던 곳에 있었습니다.
첫 마산 항쟁의 뒷날 유 씨는 도로에서 심한 외상을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40년 동안 가려지고 묻혔던 유 씨의 죽음.
올해 9월, 부마항쟁의 첫 희생자로 인정받으면서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습니다.
[유성국 / 故 유치준 씨 유가족 : 저는 기쁠 줄 알았는데 사실상 기쁨보다는 아버님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고 그나마 40년 만에 밝혀진 데 대해서는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유 씨처럼 부마항쟁으로 숨졌거나 연행 또는 구금당한 관련자는 2천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사망자가 더 있다는 진술만 있을 뿐 유 씨를 제외한 희생자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에서 인정한 관련자도 200여 명 정도에 머물러있습니다.
부마항쟁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자료를 숨기거나 없앴기 때문입니다.
또 30일 이상 구금자만 보상한다는 법도 관련자 인정에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허진수 / 부마항쟁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 부마항쟁에 대해서 관련자들은 광주항쟁과 달리 구금 일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부마로 봐서는 아주 악법이죠. 그래서 법 개정해서 하루라도 구금된 사람 다 보상받을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부마 민주항쟁의 진실을 파헤치는 위원회의 조사 기간은 오는 12월이면 끝이 납니다.
하지만 부마민주항쟁에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관련자들의 조사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진상규명의 노력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YTN 오태인[otaei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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