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71주년...눈물의 추념식 / YTN

2019-04-03 21

오늘은 제주 4·3이 발생한 지 71주년 되는 날입니다.

도민과 생존피해자, 유족 등 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념식이 열렸는데요,

취재기자를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유종민 기자!

오전에 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는데요, 어떻게 진행됐나요?

[기자]
네, 오늘 추념식에는 제주도민과 생존 피해자, 유족 등 만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오전 10시 제주도 전역에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 사이렌이 1분 동안 울리며 추념식은 시작됐습니다.

4·3 희생자들이 겪은 억압과 생존 수형인 18명의 공소기각 판결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로 본행사가 시작됐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추념사를 낭독했습니다.

1·2·3 세대가 함께 4·3 정신을 기리기 위해 4·3을 겪은 김연옥 할머니와 외손녀가 굴곡진 가족사를 낭송했습니다.

추념식이 끝난 뒤에는 도민과 유족의 헌화 분향이 이어졌습니다.


정부가 4·3의 명예 회복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추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제주도민이 "이제 됐다"라고 할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실종자를 확인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국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과 배·보상 등 입법에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회와 협의하며 정부의 생각을 제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4·3 평화재단 출연금도 늘어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주 4·3은 우리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컸던 사건으로 꼽히는데요,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죠?

[기자]
네, 제주 4·3 사건 진상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1954년까지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제주도민의 10%가 넘는 2만5천 명에서 3만여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4·3은 '폭동'으로 낙인찍혀 반세기 동안 금기어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2000년에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지금까지 희생자 만 4천300여 명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해결할 4·3 특별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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