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도 세번 지고 네번째 됐다…당신도 한번 더 해보라”-김대중 육성 회고록〈20〉

2023-10-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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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육성 회고록 〈20〉
  1992년 14대 대선 패배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 나, 김대중(DJ)은 정치 일선에 비켜나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야인’이었지만 민주당 내에 나를 따르는 ‘DJ사단’은 여전히 건재했다. 이를 견제하려는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잠복했던 갈등은 95년 6·27 전국 동시 지방선거 때 터지고 말았다.
 
6·27 지방선거는 35년 만에 단체장을 직접 뽑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한 ‘미스터 지방자치’로 불렸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지방자치제 도입을 외쳤고, 90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통해 이를 쟁취했다.
 
나는 조순 전 부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이종찬 전 정무1장관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이기택 대표에게 추천했다. 서울과 경기 수도권에서 석권해야 지방선거에서 완승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경기도지사 후보를 두고 이 대표와 충돌했다. 이 총재는 장경우 의원을 고집했다. 이 총재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 간곡히 부탁했다.
 
“경기도지사 후보를 이종찬 전 장관으로 양보해 주시면 큰 은덕을 입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리하면 이 대표의 차기 당권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이 대표는 “의견을 존중해서 결정하겠다”고 답하고 돌아갔다. 얼마 뒤 “만약 장경우가 떨어지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독선에 실망했다.
 
JP “사랑이 없는 권력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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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599?cloc=daily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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