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내일은 한미 양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지 딱 70년 되는 날입니다.
한미동맹이 시작된 날이기도 한데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서 6.25 당시 미군과 함께 참전한 카투사 1기 노병을 이다해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6.25 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유엔군 파견을 주도했던 미국.
[현장음]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공군과 해군 부대들에 한국군을 엄호하고 지원하라고 즉각 지시했습니다."
급파된 미군들은 낯선 지형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한미는 단순한 통역병이 아닌 함께 전투를 치르는 카투사를 창설했습니다.
1950년 여름 미 2사단의 전투부대에 투입됐던 참전용사 김재세 씨는 미군들에게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재세 / 카투사 1기 참전용사 (95세)]
"적군이 들어와서 (아군이 분산돼) 옆에 있는 동료가 보이지 않죠, 그럼 미군 친구 옆에 같이있어 주죠. 그 친구는 나 아니면 길을 모르니까."
인해전술로 밀어붙인 중공군에 맞서 연합군이 첫 승리를 거뒀던 지평리 전투에선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습니다.
[김재세 / 카투사 1기 참전용사 (95세)]
"그냥 최후의 발악이죠. 갈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서…"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최전방 전선에선 모두 전우였습니다.
[김재세 / 카투사 1기 참전용사 (95세)]
"너 한국 사람이다, 언어를 잘 모른다, 그게(차별이) 없어요. 다 가깝게 껴안고 손을 같이 옆으로 이래야지 전투가 되는 거지."
미군에 배속돼 전사한 카투사는 7천여 명.
미국 워싱턴에 있는 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의 벽에는 미군들과 함께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채널A 뉴스 이다해입니다.
영상취재: 박찬기
영상편집: 강 민
이다해 기자 cando@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