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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19〉
1992년 12월 18일의 14대 대선은 민주당 김대중(DJ)과 민주자유당 김영삼(YS)이 각축을 벌이고, 통일국민당 정주영이 변수로 작용하는 구도였다. YS와 초박빙의 경쟁이었지만 나(DJ)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런데 대선을 두 달 앞둔 10월에 선거판을 뒤흔드는 색깔론이 또 불거졌다. 안기부가 내놓은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이다.
안기부는 “북한에서 남파된 거물급 간첩 10여 명이 10여년간 암약하며 사회 각계각층 400여 명을 조직원으로 포섭해 대남 적화공작을 해 왔다”고 발표했다.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사건’이라 불리며 정국을 요동치게 했다.
그러면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서열 22위인 거물 간첩’ 이선실이 우리 집에 와서 아내(이희호 여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며 내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북풍과 공안정국을 일으켜 여당 후보인 YS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대선이 끝나자 요란하던 간첩단 사건은 흐지부지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에게 색깔을 덧씌우기 위해 기획된 ‘북풍(北風)몰이’라는 방증이었다.
초원복집 사건…“김영삼 끝났다”
당시만 해도 색깔론과 북풍몰이는 약효가 있었다. YS 측은 나에게 사상 공세를 펼쳤다. 그들은 지난 87년...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3404?cloc=daily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