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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12〉
1980년 5월 17일 밤 10시. 서울 동교동 집으로 무장 군인들이 쳐들어왔다.
나, 김대중(DJ)의 가슴에 대검을 꽂은 소총을 겨누더니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체포했다.
“합수부(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서 나왔습니다.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비슷한 시각, 최규하 대통령 정부는 서울 경복궁 안 중앙청(전 조선총독부 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모든 정치 활동을 중지하며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시위를 금하고, 대학을 휴교 조치했다.
나와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이 사회 불안 조성·소요의 배후 조종, 부정 축재 등 혐의자로 몰려 그날 밤 어디론가 끌려갔다.
‘5·17 신군부 쿠데타’는 이렇게 시작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79년 10·26 사태로 유신 체제가 붕괴한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던 ‘서울의 봄’은 거기서 멈췄다.
‘김대중의 내란 음모’라는 소설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지하에서 취조당했다. ‘저들’은 내가 내란을 꾸미고,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며 실토하라고 몰아쳤다.
나의 과거 언행과 글을 샅샅이 뒤져 온갖 꼬투리를 잡으려 했지만 단서나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
“내란...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1645?cloc=daily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