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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7〉
망명(亡命). 망명은 정치적 핍박과 박해를 피하려는 쫓기는 자의 고독한 운명이다. 비운의 망명객은 자신을 적대시하는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는다. ‘10월 유신’은 김대중(DJ)을 졸지에 망명 투쟁으로 내몰았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의 ‘10월 유신(維新)’은 전광석화처럼 전격적이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새로운 체제로의 유신적 개혁”이라고 선전했다. 그런 10월 유신은 ▶헌정 중단 ▶국회 해산과 정당 활동 중지 ▶헌법 개정안(유신헌법) 국민투표 등을 담은 초법적 조치였다. 전국에 선포한 비상계엄령은 ▶정치 집회와 시위 금지 ▶ 언론의 사전 검열 ▶대학 휴교 등을 발동했다.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였다. 당시 도쿄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고관절 치료를 받기 위해 잠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나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정치 생명 위협에 망명 결심
서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희호) “심상치 않아요. 들어오시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한국에선 아무것도 못 할 겁니다. 여기 걱정은 마시고, 부디 몸조심하세요.”
(DJ) “어차피 국내에선 활동할 수 없을 테니 밖에서 길을 찾아보겠소.”
이국땅 호텔 방에서 뜬눈으로 번민의 밤을 새웠다. 10월 유신의 목적은 박정희의 영구 집권이며, 이에 걸림돌이 되는 대통령 연임제 철폐와 정적(政敵) 제거였다. “(71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하면 영원히 박정희 총통제가 될 것”이...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2821?cloc=daily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