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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4〉
4전5기(四顚五起). 나, 김대중(DJ)은 1961년 5월 13일 강원도 인제에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민의원)에 당선됐다. 목포(54년)와 인제(58·59·60년)에서 연거푸 네 번 고배를 마신 뒤 다섯 번째 도전에서 성공, 첫 금배지를 달게 됐다. 천신만고 끝에 붙잡은 ‘37세 국회의원 김대중’의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고민에 푹 빠져 있었다.
당선 사흘째 되던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군인들이 서울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5·16 군사정변이었다. 군사혁명위원회가 ‘의회 해산’ ‘내각 인사 체포’ 등 포고령을 발표하고, 대한민국의 전권을 접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급거 상경했지만, 금배지는커녕 의사당에 발도 못 디뎌보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정치 활동 금지자’에도 묶여 사실상 백수로 전락했다. “정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이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9년 전 정계 투신을 결심한 이후 겪은 시련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정계 뛰어들게 한 ‘부산 정치 파동’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나는 정치·경제의 중심이 된 임시 수도 부산에 살았다. 사업상 전남 목포에서 운영하던 해운사업을 부산으로 옮겨 곡물·비료·가마니 등을 실어 날라 꽤 번창했다. 그때만 해도 사업가로서 성공하는 게 인생 목표였다.
부산은 세상을 향해 새롭고 넓은 눈...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7850?cloc=daily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