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대에서 청와대까지 영욕의 70년…시민 품으로
[앵커]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하는 내일(10일)부터 청와대는 시민에게 전면 문을 엽니다.
'최고 권력의 상징'으로 불리던 청와대가 영욕의 70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인데요.
청와대의 과거와 미래를 장윤희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서울시 종로구, 북악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와대.
대통령이 머무는 공간적 의미 그 이상의, 야망을 가진 많은 이들이 문을 두드렸던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청와대는 고려시대 수도 밖 궁궐인 '이궁', 조선시대 경복궁의 각종 행사와 과거 시험 장소로 쓰였던 뒤뜰에 터를 잡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 관사가 들어서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해방 이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인근 일대를 부르던 조선시대 옛말 '경무대'란 이름을 붙여 집무실로 사용한 것이 현 청와대의 기원입니다.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란 이름은 1960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일제시대와 이승만 정권과 차별화한다는 취지에서 채택했습니다.
과거에도 청와대는 벚꽃이 만개하는 봄철에 연례 행사처럼 일반에 개방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으로 청와대 개방은 중단됐고 대통령 경호는 삼엄해졌습니다.
'구중궁궐'이란 지적 속에 역대 대통령들도 집무실 이전을 검토했지만 현실적 한계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청와대 주변 시설과 산책로를 순차 개방하며 '권위주의' 상징을 내려놓고자 했습니다.
7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이제 '청와대'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10일 첫날에는 2만 6,000명이, 그 이후로는 매일 3만 9,000명의 일반 시민이 청와대를 거닐게 됩니다.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를 개방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닌, 국민과 소통하고 제대로 일하겠다는 약속을 실천할 때 청와대 개방이 갖는 의미는 온전해질 전망입니다.
연합뉴스TV 장윤희입니다. (e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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