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품는 용산…'외세 강점' 역사

2022-03-20 17

대통령실 품는 용산…'외세 강점' 역사
[뉴스리뷰]

[앵커]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용산은 지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여서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구한말 청나라 군대에서부터 일제 강점을 거쳐 주한미군까지 군사기지로 활용됐습니다.

배삼진 기자입니다.

[기자]

경복궁이 있는 광화문에서 한강으로 이동하는 길목인 용산(龍産)은 지리적 형세가 용과 흡사해 붙여진 지명입니다.

물류의 중심이기도 해 조선시대에는 물산의 집하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려말 몽골군이 용산 일대에 병참기지를 두는 등 외세 침입의 교두보였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했고,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상륙한 곳도 용산이었습니다.

일제병합 이후에는 일본군 보병 15개 중대가 배치되는 등 주요 군사시설로 본격 활용됐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미 7사단이 용산기지에 진주했고, 6.25 전쟁 당시 정부가 용산기지를 미국에 공여하며 주한 미군 부대의 근거지가 됐습니다.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점철된 용산은 1990년 한미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을 위한 기본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2003년 5월 한미는 용산기지 평택 이전에 합의했고, 2005년에는 용산 국가공원 추진 방안도 발표됐습니다.

이후 기지 이전은 두 차례나 미뤄지는 등 공전을 거듭했고 2017년에 들어서야 본격화했습니다.

" 워커 장군 동상은 (평택으로) 옮겨지지만, 한미동맹과 '같이 갑시다' 정신은 철통같이 강력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주한 미군기지 이전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을 계기로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연합뉴스TV 배삼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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