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외치는 "나, 너, 우리" / YTN

2021-08-15 10

지난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페터 한트케의 독특한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320여 명의 등장인물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연극인데요.

기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표정 없는 배우 수십 명이 무대를 거닙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무대를 가로질러 뛰어가더니, 소방호스 둘러맨 소방관이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발레 하는 아이, 보드 타는 소년, 피크닉 가는 사람들과 쓰레기 줍는 청소부.

누구나 살면서 봄 직한 장면들이 그냥 무대 위에 재현됩니다.

20여 명 배우가 옷 갈아 입으며 320여 명의 역할을 해내는 2시간 동안 대사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한트케의 다른 대표작 '관객모독'은 특별한 연기나 무대장치 없이 주야장천 말만 쏟아내던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로 말을 쏙 빼버렸습니다.

말이 없어도,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김아라 / 연출 : 존재에 관한 것, 삶에 관한 것, 혹은 우리가 사라지는 이 사회라든가 인간 관계라든가 이런 데서 어떤 희망을 찾으면서 살아가야 될 것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연극…]

유일하게 옷 갈아입지 않고 2시간 내내 무대 위를 지키는 노숙자는 배우이자 동시에 관객입니다.

[정동환 / 배우 (노숙자 역) : 우리가 사는데는 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 이건 무지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것 때문에 우린 바르게 살아야 되고 옳게 살아야 되고 …]

무대 속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무대 밖 관객들은 배우들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끊임없이 관심을 쏟습니다.

배우들이 객석에서 연기하고 관객들은 무대 위에 앉아 보도록 한 것도 그런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갓난아기가 촛불로 바뀌고 시위진압 장면이 삽입되는 등 원작과 다소 달라진 각색은 아쉽지만, 코로나 시대 부득불 떨어진 거리만큼 마음까지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YTN 기정훈입니다.

YTN 기정훈 (prodi@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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