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난 심각…간부 처벌·음악정치로 민심 달래기
[앵커]
북한에서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생활고에 따른 주민 불만이 높아지자 김정은 정권은 일부 고위 간부를 처벌하고, '음악 정치'로 민심 달래기에 나섰는데요.
최근 북한 내부 상황, 지성림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북한은 최근 유엔에 '자발적 국가별 검토'(VNR) 보고서를 처음으로 제출했습니다.
박정근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내부 수요를 위해서는 매년 700만t의 곡물이 필요하지만,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552만t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기구 지원과 중국 등으로부터 식량 수입을 통해 곡물 부족분을 메꿔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식량 유입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국경 봉쇄가 1년 반 넘게 지속되자 북한 시장들에서는 수입에 의존하던 생필품은 물론이고, 식량도 점차 고갈되는 상황입니다.
물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국정원 국회 보고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식량 판매 가격 상한선을 정해놓고, 이를 어기면 총살하겠다고 상인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조치에 북한 곡물 상인들은 식량을 팔지 않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데 상인들까지 시장에 물량을 내놓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국과의 무역과 밀수를 통해 돈을 벌던 사람들이 국경 봉쇄로 현금 수입이 없어지면서 전체적인 구매력도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또 무역과 밀수 중단으로 위안화를 비롯한 외화 수요가 급감해 환율은 두 배 이상 폭락하고, 이 때문에 외화를 보유하고 있던 주민들의 재산은 반토막이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현재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늘어나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아사자도 나온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노인 등 취약계층부터 피해를 보게 되죠.
얼마나 상황이 심각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마저 지난달 중순에 열린 노동당 회의에서 식량난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농업 부문에서 지난해의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 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하여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하시면서…"
당시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특별명령서까지 발령했는데요.
그만큼 민생 문제 해결이 김정은 정권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겁니다.
높아가는 주민 불만을 의식한 김정은 정권은 고위 간부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민심 수습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일부 고위 간부의 직무태만을 질책하고 이들을 인사조치했습니다.
"당과 혁명 앞에 지닌 숭고한 책임과 사명을 저버리고 당 결정과 국가적인 최중대 과업 수행을 태공(태업)한 일부 책임 간부들의 직무태만 행위가 상세히 통보됐습니다."
회의에서는 군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문책을 당했는데요.
리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해임되고 원수 계급장을 단 군복을 벗었습니다.
박정천 군 총참모장은 원수에서 차수로 강등됐고, 김정관 국방상은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되며 자리까지 내놨습니다.
이들은 중국으로부터 식량과 생필품 수입을 재개하기 위해 국경 근처 평북 의주 군용비행장에 대규모 방역 시설을 건설하라는 김 위원장 지시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해 처벌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간부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집권 때부터 써먹던 '음악 정치' 카드를 다시 꺼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조선노동당이여~"
북한에서는 최근 노동당을 인민의 '어머니'로 찬양하는 이 노래와 함께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독려하는 우상화 가요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우리 원수님 오직 한 분만 일편단심 따르리라"
두 노래는 지난달 김 위원장이 관람한 가운데 열린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북한은 나아가 지난 2일부터는 평양 삼지연극장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매일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내부 결속에 힘을 쏟는 북한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밀착 행보가 눈길을 끕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 등 계기 때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내며 믿을 건 중국밖에 없다는 신호를 꾸준히 발신하고 있습니다.
시 주석은 시 주석대로 김 위원장 기대에 화답해 북한까지 챙길 마음이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나는 총비서(김정은) 동지와 함께 두 나라의 친선협조 관계를 끊임없이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나감으로써 두 나라와 두 나라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처럼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 죽는 상황은 아직 아닙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갑작스러운 배급 체계의 붕괴로 국가에만 의존했던 주민들이 생존할 수가 없었지만, 20년 넘게 시장에서 살아남은 지금의 주민들은 그때보다는 자생력이 훨씬 강합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수동적인 방역 조치에만 의존해 국경 봉쇄를 지속한다면 생활력이 뛰어난 북한 주민들도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TV 지성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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