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별세,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 YTN

2019-06-11 3

■ 진행 : 김정아 앵커
■ 출연 : 김병민 / 경희대 겸임교수, 김성완 / 시사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97세를 일기로 어젯밤 11시 37분에 별세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치열한 생의 여정을 마감한 이희호 여사.

그 발자취를 지금부터 김병민 경희대 겸임교수, 김성완 시사평론가 두 분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희호 여사 하면 단순히 영부인을 넘어서 민주화 운동도 하셨고 또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시기도 하고 말년에 평화운동도 하셨던. 어떻게 보면 현대사에 굉장히 큰 획을 그은 이런 여성 인물입니다.

[김성완]
맞습니다. 보통 대통령 영부인 하면 영부인으로만 기억이 되는데 이희호 여사는 그런 분으로 기억되지 않고요.

영부인이 되시기 전에도 이미 민주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주화운동을 많이 하셨고요.

방금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일제치하를 겪고 난 다음에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그리고 여성운동을 곧바로 시작하셨던.

요즘에 남녀 갈등이 되게 많다, 성, 젠더 갈등이 많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요즘으로 말하면 굉장히 진보적 여성운동을 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그리고 정치에 뛰어들고. 그 엄혹한 시절을 다 함께 겪어왔던 그런 분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성, 또 영부인으로 우리가 기억하기보다는 우리 시대에 한 획을 그은 큰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엘리트 여성이었는데 개인의 영달보다는 일생을 여성운동가, 이 부분을 굉장히 주목해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김병민]
현재 전쟁 당시 1952년 부산으로 가서 처음으로 했던 일 중에 하나가 여성문제 연구원을 설립하게 되는데요.

이희호 여사가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돌아오고 나서 사실은 사회 운동에 헌신하면서 했던 첫 번째 캠페인이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혼인신고를 합시다가 캠페인이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말 그대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로 축첩의 형태로서 이루어지게 되는 잘못된 관행들이 남아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당시에 요정정치를 반대하는 이런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국회에 축...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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