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의암 손병희 선생이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습니다.
손병희 선생은 지난 1919년 독립선언서 발표를 주도해, 들불처럼 번진 만세 운동에 도화선을 놓았습니다.
이문석 기자입니다.
[기자]
의암 손병희 선생은 3·1 독립선언서 발표에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독립선언 3대 원칙의 하나인 '비폭력투쟁'을 이끌었습니다.
선생의 사상은 동학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개화를 통해 민족 역량을 키우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고려대학교인 보성학교를 포함해 수십 개 학교를 운영하며 교육 중심의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김응선 / 의암 손병희 기념관 해설사 : 일본의 근대화를 보고 우리나라도 독립하려면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셔서….]
한때 교단 내부에 친일 세력인 일진회가 자라자 동학의 이름을 천도교로 바꿔 혼란을 수습했습니다.
독립선언을 앞두고는 전국에 배포할 독립선언서 2만여 부를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몰래 찍어냈습니다.
당시 인쇄 작업이 일본 경찰에 발각돼 독립선언이 무산될 뻔한 위기를 선생이 큰돈을 들여 입막음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3·1 운동 뒤 투옥된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다 뇌출혈로 출옥했습니다.
선생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62살의 나이로 순국해 서울 우이동 언덕에서 그토록 원하던 민족의 독립을 지켜봤습니다.
YTN 이문석[mslee2@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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