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였을까.
외설작가였을까.
시대와의 혹독한 불화를 겪고 세상에서 퇴장한 노교수. 그의 이름은 마 광 수입니다.
'외설 논란'에 휘말려 세상으로부터 낙인이 찍힌 교수의 마지막 길은 쓸쓸했습니다.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데다 목을 맨 채 숨진 점으로 미뤄,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불편한 시선을 받았지만, 마 교수의 사회 초행길은 비단길이었습니다.
[양지열 / 변호사 : 이분이 원래는 학문적 성격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셨거든요. 시인 윤동주에 대한 연구 1호였었고, 그걸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30대 초반에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가 됐던 천재성까지 인정됐던 분이었는데….]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마 교수는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스물 여덟에 교수로 임용될 만큼 촉망받는 국문학자였습니다.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수필집을 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습니다.
성에 대한 솔직한 담론을 펴내기 시작한 겁니다.
요즘 보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의식이 부재하고, 성 엄숙주의가 만연했던 당시 한국사회에서 마 교수는, 이런 이중성을 경멸하고 꼬집었습니다.
[마광수 / 2013년 인터뷰 : 성의 이중성.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소설 제목대로 한다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죠. 낮에는 근엄한 신사, 밤이 되면 색광이 되는 거지.]
'시대의 이단아'라고 불린 마광수 교수.
1991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소설을 내놓으면서 큰 논란을 불러옵니다.
여주인공이 대학생 신분으로 교수와 성관계를 하는,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한다는 내용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한 겁니다.
'즐거운 사라'는 예술과 외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급기야, 마 교수는 강의를 하던 도중 1992년 10월, 음란물제작 유포 혐의로 긴급 체포됩니다. 구속 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서 교수직도 박탈당했습니다.
당시 판결문 내용입니다.
판사는“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명시하면서 "즐거운 사라가 묘사방법이 적나라하고 선정적이다, 음란한 문서에 해당된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습니다.
교단을 물러났던 마 교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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