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투시력이로구나!)
할 수 없이 사실대로 얘기할 수 밖에요.
' 무기와 화살입니다. 오늘 하도 적이 많이 와, 혹 악인이 섞여 들
어오지나 않았을까 해서 특별히 몸에 지녔습니다. '
' 응, 정말 현명하네. 운기가 자넬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오죽 좋을
까! 그 화살은 내게주고 가게.'
나는 옷 속에서 화살을 꺼내 그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는 화살
하나를 꺼내 몇 번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활에 걸었죠.
' 자네는 어서 길을 떠나게! '
나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는 몹시 당황스러웠지요.
(내 등에 대고 쏠지도 몰라! 조심해야지.)
이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몸을 굽혀 예를 올리고 천천히 뒷걸음질
쳐 방을 나왔습니다. 방을 빠져나온 후에야 몸을 돌렸지요. 한참을
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는 창문에 대고 활을 겨누고 있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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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창을 지키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더욱
의심스러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전백부의 얼굴을 떠
올려 봤지요. 시종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어딘가 은밀히
숨기는 것이 있는 듯 했습니다. 나는 결코 그가 내게 호의를 품고
있지 않다는 단정을 내렸지만, 아버지께 이 모든 일에 대해 말씀드
리면서도 청문 누이의 일은 숨긴 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노하
실 테니까요. 아버지는 우선 보따리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나
보자고 하셨고 저 또한 그럴 작정이었지요. 둘이 보따리를 풀어 보
니 그것은 철합이었습니다.
전백부가 호일도의 아들에게서 이 철합을 빼앗는 것을 아버지께서
는 현장에서 보신 적이 있으셨답니다. 후에 천룡문 진문의 보도를
이 철합에 넣어 두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참으로 기이한 일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
하시며 아버지께서는 철합 옆에 감춰진 짧은 활이 있다는 것도 아셨
고 철합을 여는 방법도 아셨으므로 우리는 쉽게 열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자는 철합 속을 들여다보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그 합은 비어 있었으니까요. 다시 말
해서 어떠한 물건도 들어 있지 않았지요. 아버지께서 먼저 입을 여
셨습니다.
' 이게 어찌된 일이냐? '
나도 처음엔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었지요. 그러나 저는 눈치를 챘
습니다. 이는 필시 전백부가 나를 함정에 밀어넣기 위한 독계였던
것입니다. 그는 보도를 다른 곳에 숨겨 놓은 채 철합만을 내게 주었
던 것입니다. 분명 사람을 보내 노상에서 나를 저지해 붙잡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내가 그의 보도를 훔쳤다고 모략을 하며 내놓으라
고 협박했겠지요. 내가 보도를 내놓지 않더라도 그는 나를 죽이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청매의 혼사를 뒤로 미뤘다가 조사형에게 그
녀를 시집보낼 작정이었겠지요. 아버지께서는 이 같은 경위를 모르
셨으니 그의 이러한 독계를 간파할 턱이 있었겠습니까. 나는 아버지
에게 사실대로 밝혀 드릴 수가 없었지요. 한참을 멍청이 있다가 부
자가 또 의논해 봤으나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
다. "
조운기가 또 옆에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 너는 내 사부님을 살해하고 우리 천룡문 최고의 보물을 훔치고서
도 또 무슨 헛소리냐. 이렇게 우스꽝스런 얘기로는 세살난 아이조차
도 속일 수 없을게다. "
도자안이 냉소를 띄우며 말했다.
" 전백부가 이미 돌아가셔서 증거가 없긴 하지만 내 수중엔 확증이
있다. "
조운기가 미친 듯이 펄쩍 뛴다.
" 증거? 무슨 증거. 자, 여기 만인 앞에 보여 보시지! "
" 시간이 되면 자연 내보일 것이니 서두르지 말라. 여러분, 이 조사
형이 내 말을 가로챘으니 그에게 직접 얘기를 듣는게 어떻겠습니까?"
보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 조운기, 이 쥐새끼 같은 놈! 이 늙은 중과 담판을 내 보자. 네 놈
이 눈알을 부릅뜨고 노려보면 어쩔 테냐? "
조운기는 보수의 말에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감히 더 이상 도자
안에게 뭐라 덤빌 수가 없었다.
조운기의 주춤하는 태도를 본 도자안이 얘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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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철합을 전씨 집안에서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틀림 없이
신패명렬(身敗名裂)의 화를 당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 아버지, 여기에는 필시 굉장한 내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보
따리를 장인에게 돌려 주어야겠어요. 다시는 이 집안 일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
하고 철합을 다시 비단에 싸며 마음속으로는 결심을 하고 있었지요.
어떻게 해서든 그의 계책을 깨뜨리고, 모든 진상을 사람들 앞에서
실토하게 하겠다고요.
내가 그 보따리를 들고 전백부의 방으로 급히 가 보니, 이미 방안
의 불은 꺼져 있었고 창문과 방문은 모두 꼭꼭 닫혀 있었지요. 나는
속으로 일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 잠시라도 더 지체할 수 없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창 밖에서 소리쳐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백부님, 백부님! '
아무리 불러봐도 방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내 마음엔 의문
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무공이라면 아무리 깊이 잠들었다 해도 즉시 알 터인데, 그
렇다면 일부러 못 들은 척 하는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두려워지기만 했지요. 천룡문의 제자들이
이미 구석구석 매복해 있다가 일시에 달려들어 내게 보도를 내놓으
라고 협박할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그에게 자초지종
을 설명했습니다.
' 백부님! 아버님께서 이 보따리를 돌려